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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단순한 수줍음과 어떻게 다를까
집에서는 가족과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장난도 잘 치지만, 어린이집이나 학교에만 가면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쉬운 질문을 해도 몸이 굳고 시선을 피하며, 친구에게 필요한 말을 건네지 못하기도 합니다. 주변에서는 낯을 많이 가리거나 말하기 싫어서 버티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모습이 반복된다면 선택적 함구증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택적 함구증은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서는 지속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불안장애입니다. 집처럼 편안한 장소에서는 자연스럽게 대화하지만 학교, 학원, 식당 또는 낯선 사람 앞에서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선택적 함구증의 침묵은 말하지 않겠다는 선택보다,
불안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선택적’이라는 이름 때문에 아이가 말할 장소를 고른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당사자가 편한 사람과 환경에서는 말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 필요할 때 마음대로 침묵을 선택하거나 해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낯선 환경에서 말수가 줄어드는 것은 흔한 반응입니다. 수줍음이 많은 아이도 새로운 교실에서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거나 부모 뒤에 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환경에 익숙해지면 인사하거나 짧은 대답을 하는 등 조금씩 의사표현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선택적 함구증에서는 익숙해진 뒤에도 특정 상황에서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고, 학습과 관계 또는 기본적인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선택적 함구증이 있는 사람은 말을 요구받는 순간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 표정과 몸이 갑자기 굳음
- 상대방의 시선을 피함
- 입을 움직이지만 소리를 내지 못함
- 고개 끄덕임이나 손짓으로 대답함
- 부모나 친한 친구에게 대신 말해달라고 함
- 질문을 받을 수 있는 활동을 피함
- 교실에서는 속삭이지만 집에서는 평소 목소리로 말함
- 사람이 들어오면 하던 말을 갑자기 멈춤
모든 사람이 몸짓이나 표정으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불안이 매우 높아지면 말뿐 아니라 고개 끄덕이기, 가리키기, 눈 맞추기 같은 비언어적 반응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선택적 함구증에서는 불안으로 인한 동결 반응처럼 몸 전체가 멈춘 듯 보이기도 합니다.
말을 하지 못하면 단순히 발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질문할 수 없고,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몸이 아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배가 고파도 급식이나 간식을 달라고 말하기 어려워 참는 경우도 있습니다.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해 혼자 지내거나, 말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려고 등원과 등교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성인까지 증상이 이어지면 대학 수업, 면접, 전화 통화, 직장 회의와 대인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2. 선택적 함구증은 어떻게 평가할까
선택적 함구증을 확인하는 단일 검사나 혈액검사는 없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심리 전문가, 언어재활사 등이 가정과 학교에서 나타나는 의사소통의 차이를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선택적 함구증을 평가할 때 살펴보는 내용
평가 항목 확인하는 내용 구분이 필요한 상태 상황에 따른 차이 집과 학교, 사람에 따라 말하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일반적인 수줍음 지속 기간 특정 상황의 침묵이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 생활의 영향 학습·관계·도움 요청에 어려움이 생겼는지 일시적인 말수 감소 언어 능력 편안한 상황에서 말하고 이해하는 능력 언어발달 문제 신체적 요인 청력과 발성기관 등에 어려움이 있는지 청력·음성 문제 함께 나타나는 증상 사회불안, 분리불안, 발달 특성 등이 있는지 다른 불안·발달 문제 진단에서는 말을 해야 하는 특정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학업이나 직업생활 또는 사회적 의사소통이 방해받는지 확인합니다. 이러한 상태가 일반적으로 1개월 이상 이어져야 하며, 새 학기 첫 한 달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기간만으로 진단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진료실에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평가 과정에서 억지로 대답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글이나 그림, 손짓으로 의사소통하게 하거나 집에서 자연스럽게 말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과 보호자의 설명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외국어 환경에 처음 들어간 아이가 새로운 언어를 잘 알지 못해 침묵하는 모습도 선택적 함구증과 구분해야 합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는 일정 기간 말수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다언어 환경의 선택적 함구증을 평가할 때는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이든 여러 낯선 상황에서 침묵이 나타나는지 확인합니다. 단순히 해당 언어가 익숙하지 않아 말하지 못하는 상태를 선택적 함구증이라고 진단해서는 안 됩니다.
말을 더듬거나 발음이 부정확한 아이는 자신의 말이 평가받을까 봐 불안해할 수 있습니다. 청력 문제, 언어발달 문제, 자폐스펙트럼 특성, 사회불안장애 등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충격적인 사건 이후 모든 장소에서 갑자기 말을 하지 않게 된 경우에는 선택적 함구증과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을 못 하고 얼굴 마비, 한쪽 팔다리의 힘 빠짐, 의식 변화가 동반된다면 불안 문제로 판단하지 말고 즉시 응급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3. 말을 강요할수록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아이가 대답하지 않으면 어른은 “인사 정도는 해야지”, “작게라도 말해봐”라고 재촉하기 쉽습니다. 답을 알고 있으면서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 앞에서 혼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아이의 대답을 기다리며 바라보면 말해야 한다는 압박이 더 커집니다. 작은 목소리를 냈을 때 지나치게 놀라거나 크게 칭찬하는 반응도 아이에게 ‘내 목소리는 모두가 주목하는 특별한 사건’이라는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말할 기회를 주는 것과 지금 당장 말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다릅니다.”
가족과 교사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 대답할 때까지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
- 많은 사람 앞에서 갑자기 발표시키기
- “원래 말을 안 하는 아이”라고 소개하기
- 말하지 않으면 선물이나 활동을 제한하기
- 또래와 비교하거나 예의가 없다고 혼내기
- 속삭이거나 몸짓으로 표현한 내용을 무시하기
- 말했을 때 과도하게 놀라며 주변에 알리기
대신 말하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야 합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선택지 고르기, 카드나 그림 사용하기, 글로 적기처럼 현재 가능한 의사소통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질문 방식도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학교 어땠어?”처럼 바로 긴 대답을 요구하기보다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거나, 질문 대신 “오늘 그림에 파란색이 많이 들어갔네”처럼 부담 없는 설명으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질문한 뒤에는 서둘러 답을 대신하지 말고 몇 초간 차분히 기다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아이가 극도로 불안해하거나 안전과 건강에 관한 요청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말이 아니어도 즉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정해두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아이가 비교적 편하게 느끼는 교직원 한 명을 정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만드는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전체 학급에서 발표하게 하기보다 조용한 공간에서 한 사람과 비언어적 활동을 하는 단계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4. 치료는 목소리보다 불안을 먼저 다룬다
선택적 함구증 치료의 목표는 말을 억지로 끌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을 낮추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의사소통의 범위를 조금씩 넓히는 것이 핵심입니다.
치료에는 개인의 나이와 증상, 동반된 어려움에 따라 행동치료와 인지행동치료가 활용될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 전문가와 언어재활사, 가족과 교사가 같은 방향으로 협력하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대표적인 접근에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습니다.
- 단계적 노출: 불안이 낮은 말하기 상황부터 천천히 연습하기
- 자극 점진 소거: 편한 사람과 이야기하는 공간에 새로운 사람을 서서히 참여시키기
- 행동 형성: 몸짓, 입 모양, 작은 소리, 단어, 문장으로 의사소통 단계를 넓히기
- 긍정적 강화: 결과만 평가하지 않고 의사소통을 시도한 과정을 격려하기
- 환경 조정: 사람 수와 장소, 질문 방식 등 불안을 높이는 요소를 조절하기
예를 들어 빈 교실에서 부모와 편하게 놀이하며 말할 수 있다면 교사가 멀리서 조용히 참여하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후 부모가 자리를 비우고 교사와 짧은 말을 나누는 방식으로 한 번에 하나의 조건만 바꿔갑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준비 상태보다 빠르게 단계를 높이지 않는 것입니다. 어제 한 문장을 말했다고 오늘 반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게 하면 불안이 다시 크게 높아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이가 불안해할 때마다 주변 사람이 모든 말을 대신하면 말하지 않는 상태가 굳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무조건 대신 말해주거나 무조건 혼자 대답하게 하는 양극단을 피하고, 치료 계획에 따라 기다림과 도움의 정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불안이 매우 심하거나 다른 불안장애가 함께 나타난다면 전문의의 판단에 따라 약물치료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약물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치료가 아니며, 임의로 복용하거나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선택적 함구증이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말을 왜 안 하느냐”는 추궁이 아니라 말하지 못해도 안전한 관계입니다. 침묵을 고집이나 무례함으로 해석하지 않고, 현재 가능한 의사소통을 인정하며 한 단계씩 경험을 넓혀가면 목소리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과 장소도 서서히 늘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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